단양군 별방리엔 옛날다방이 있다.
함석지붕보다 높이 걸린 춘방다방 낡은 간판
춘방이란 나이 70을 바라본다는 늙은 누이 같은 마담
향기 없이 봄꽃 지듯 깊게 주름 팬 얼굴에서
그래도 진홍 립스틱이 돋보인다.
단강에 뿌옇게 물안개 핀 날 강을 건너지 못한
떠돌이 장돌뱅이들이나 길모퉁이 복덕방 김씨
지팡이 짚고 허리 꼬부라진 동네노인들만
계란 노른자위 띄운 모닝커피 한잔 시켜 놓고
종일 하릴없이 오종종 모여 앉아 있다.
한참 신나게 떠들다가 오가는 사소한 잡담들이
열정과 불꽃도 없이 슬그머니 꺼져
구석의 연탄재처럼 식어서 서걱거린다.
네 평의 홀엔 다탁도 네 개, 탁자 사이로
추억의 '빨간 구두 아가씨'가 아직도 흐르는 곳
행운목과 대만 벤자민이 큰 키로 서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멍하니 지켜본다.
장부 없이 외상으로 긋고 가는 커피 값
시간도 외상으로 달아놓고 허드레 것처럼 쓴다.
판자문에 달린 딸랑종이 결재하듯 딸랑거릴 뿐
이 바닥에선 유일하게 한 자락 하는 춘방다방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
실천문학,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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