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 : 시시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모음
시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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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당신은 첫눈입니까』가 있고 산문집으로 『시의 인기척』,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가 있다. 질마재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981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2015년까지 영화 현장에 있으면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일곱 작품에 참여하였고, ‘목년사’에서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시집 『연애의 책』 『식물원』 『작가의 탄생』이 있고 산문집 『디스옥타비아』 『산책과 연애』 『거짓의 조금』을 썼다. 난설헌시문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1],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문예창작전공 강사로 재직 중이다. 2012년 제31회 김수영문학상, 2019년 제18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2021년 제66회 현대문학상(시 부문)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등이 있다.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에 「칼레의 바다」 외 여섯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등이 있다.
서효인은 1981년 6월 12일 광주 출생으로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수상 작품은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 2008년 제2회 시작문학상과 제5회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2015년 제15회 노작문학상, 2014년 제18회 현대시작품상, 2017년 제18회 백석문학상[3]을 받았다.
시인들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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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는 비고 오구 있어요, 비가 오지 않는다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글을 읽으세요, 세르주 갱스부르**의 이니셜 B·B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읽으면 더욱 좋구요, 갱스부르의 노래가 없다면 갱들이 부르는 노래두 괜찮구요, 노래구 뭐구 글을 안 읽으신다면 더욱 좋구요) 1 반복 보잘것없는 육신의 횡포, 하나의 천박한 영혼이 되었다. 아아 잔혹한 세월과 병든 의식들이 질병처럼 우리들의 온몸을 휩싸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늪지의 풍경 속에서 하나의 천박한 영혼이 되었다. 정처 없이 바람이 불고사랑을 닮은, 결코 사랑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 페스트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 불온한 밤과 열병의 거리를 헤매며 그때 내가 읽었던 것은 무엇인가. 정처 없이 바람이 불고 열병을 닮은 하나의 페스트 같은 사랑이 나를 휩쓸고..
바람이 없으니 불꽃이 고요하네 살아서는 못 가는 곳을 불꽃들이 가려 하고 있네, 나도 자꾸만 따라 가려 하고 있네 꽃향기에 취한 밤, 꽃들의 음악이 비통하네 그대와 나 함께 부르려 했던 노래들이 모두 비통하네, 처음부터 음악은 없었던 것이었는데 꿈속에서 노래로 나 그대를 만나려 했네 어디에도 없는 그대, 어디에도 없는 생(生) 취해서 살아야 한다면 꿈속에서 죽으리 '단편들' 세계사, 1997
창 밖에는 노을이 밀려오구요 燒酒 한잔 생각만 간절하구요 바람에 섞여 소문들 흘러가네요 나는 앉아서 늙어만 가요 내 눈꺼풀의 창문은 어둡고 쓸쓸해 자전거를 타고 가던 당신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요 떠가는 염소구름도 이제는 보이지 않아요 나는 지금 추억 안에 서서 거리의 나무들과 함께 걸어가네요 거리는 이미, 하늘로 통하는 동굴의 입구 같은 별들이 무수한 길들을 만드는 밤이구요 '단편들' 세계사, 1997
그것은 풀리지 않는 욕망의 매듭 같은 것이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려 하늘의 뿌리가 지상에 쓰며들 때 더러는 꿈속까지 비가 내려 잠든 욕망의 옆구리를 들쑤실 때 애인이여, 너를 덮고 잠들던 나의 곤고한 청춘은 한 장의 음화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갈증과 회환이 교차하는 새벽의 문턱에서 삶은 때로는 죽음보다도 더 깊은 침묵으로 나를 엄습하고, 그 격렬한 고독으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던 것은 어쩌면 그 아름답고 우울한 한 장의 음화였는지도 모른다 산다는 게 어쩌면 낡은 구식 쟁기와 같은 것이어서 이미 경작할 마음의 밭이 없는 나는 늘 죽음 쪽에 가깝고, 죽음이 나를 수소문하는 저잣거리에서 나는 추억을 헐값에 팔아 넘겼으므로 홀가분하게 죽음에 자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상의 유리창에 달라붙은 한없이 습기찬 성..
나는 지금, 내리는 눈을 보고, 눈은 저를 쳐다보는 나를 보며 내리고 있네 눈은 처음엔 하염없는 영혼이었네, 저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지금 내리는 눈은 제 몸을 숨기며 내리고 있네, 육체를 가졌다는 것이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그렇게, 내리는 눈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네 고요히 음악만이 살아 있는 이 시간을 나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가끔씩 내가 이토록 고요히 살아 있는 시간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시간을 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차가운 시간 위로 내려와 대지의 시린 살결을 덮어주는 그대 따스한 숨결을 나는 지금 음악처럼 듣고 있네 세상의 후미진 곳에 서 있는 겨울 나무들은 이제 마지막 남은 손바닥을 내밀어 눈물로 젖어드는 하늘의 사랑을 ..
이제는 쓰지 않는 오래된 옹기 위에 옥잠화가 심어진 토분을 올려놓아 보네 맑은 가을 하늘 어딘가에 투명한 여섯 줄의 현이 있을 것만 같은 오후 생각해보면, 나를 스쳐간 사랑은 모두 너무나 짧은 것들이어서 옹골찬 옹기 같은 내 사랑은 왜 나에게 와서 오래 머물지 않았던 것인가 안타까워지는 이 오후에 햇살과 바람이 연주하는 내 기타 소리는 너무나 낡고 초라하지만 나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온몸으로 그대에게로 가네 이제는 떠나지 못하게 오래된 옹기 위에 묵직한 토분을 올려놓으며 정성스레 물을 주고 있네 그대는 옹기, 나는 토분 이렇게 우리 옹기종기 모여 추운 한 시절 견디며 킬킬대고 있네 햇살 두툼한 오후를 껴입고 나와 앉아 옹기 위에 토분을 올려 놓으며, 근사하다고 우리의 삶도 이만큼 근..
창밖엔 눈이 내렸네, 하루 종일 눈이 내렸네, 어디에서부턴가 눈물의 경계를 지난 눈들의 육체, 영혼도 나무들을 떠나는 이 시각에 저 눈들은 다 뭐란 말인가, 물방울이 되지 못한, 눈물이 되지 못한 딱딱한 눈들이 쳐들어오는 동안, 산골짜기에서는 어린 나뭇가지들이 뚝뚝 부러졌네,산짐승들 굴 속에서 폭설이 멎길 기다렸네, 나는, 가스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또 다시 물이 끓기를 기다렸네, 눈이 내렸네, 주전자 속에서 폭풍우가 치고 하루 종일 마음이 고요하게 들끓는 동안, 눈은 진눈깨비가 되어퍼붓다가, 멎고, 하면서 집요하게 애인처럼 내렸네, 이미 초토화된 내 추억의, 삶의 공터 위로..... 하루 종일 하얀 돛배가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사. 2015년
꽃은 작고 바람은 크게 흐르네 그런 어느 날 나는 너무나 약하게 태어났네 그래서 한 여자만을 사랑하기로 했네 한 여자에게 이르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그대라는 말을 보게 되었네 이건 수사가 아니라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기에도 힘이 든다네 이슬은 작고 먼지는 크게 흐르네 사람들이 뭐라 해도 그대로 인해 나는 삶을 중지할 수 없었네 나는 감사하네 단지 한 여자를 노래하기에도 삶이 모자란다네 바람이 작고 나비가 너무도 크게 움직이네 나는 너무도 약하게 태어났네 그래서 한 여자만을 위해 최선을 해야 했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문학과지성사, 1995
밀룽가 거리에 바람이 불어요 그대와 함께 하루 종일 밀룽가 거리를 쏘다녔지요 발이 아플 즈음에 저녁이 왔구요 바람에 떠밀려 초저녁별들도 밀려왔어요 우리를 따라온 어둠이 건물에 하나 둘 불빛을 매달았구요 우리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밀룽가 거리의 이층 찻집에 들어갔지요 군데군데 호롱불이 켜져 있던 마구간 같던 실내 그곳에서 우리는 따뜻한 마유주를 마셨지요 창밖엔 이미 캄캄한 어둠이었는데요 간혹, 그대가 탁자 위 술잔을 채우던 소리는 이미 아름다운 음악이었지요 그해 겨울, 그대와 내가 숨어들었던 밀룽가 거리의 이층 찻집은 우리의 짧은 생애였지요 시끄럽던 중국인 거리의 홍등가를 지나가면 문득 나타나던 줄 없는 현악기 같았던 건물 한 채, 그대의 숨결이 내 가슴에 닿아 한 줄기 현으로 이어지던 곳 우리의 사..
어느 날 문득 그대가 내 家系를 물어오면 나는 내 마음의 좌측 심장을 관통해 흐르는 강물의 이름으로, 섬진족이라 말하리라 강가에 쌓아놓은 모래알들의 낟가리 그 따스한 모래 속에 발을 묻고 섬진강 물결 속에 손을 담그면 강바람은 내 얼굴을 모닥불처럼 피워 올리리, 따스하리 바라보는 풍경들이 내 시선에 익어 고용히 단풍 들어갈 때 은어떼 내 손금 속 강물을 따라 점점 가을로 올라오리니 그대가 나에게 가을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오면 그대를 데리고 하동 평사리 백사장으로 가리 처음부터 끝까지 맨발로 걸어 뜨겁게 단풍 드는 발바닥이 섬진족의 가을에 당도할 때까지 '아무르 기타' 문학사상사, 2004
고독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바다의 문지방 같다 주름진 치마를 펄럭이며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던 내 고독의 문턱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었던 生생의 밑바닥 그곳에서 橫行횡행하던 밀물과 썰물의 시간들 내가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던 울음을 끝내 갈매기들이 얻어가곤 했지 모든 걸 떠나보낸 마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렇게 넓은 황량함이 내 고독의 터전이었다니 이곳은 마치 한 생애를 위해 걸어가야 할 광대한 고독 같다, 누군가 바람속에서 촛불을 들고 걸어가던 막막한 생애 같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 해안에 가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
촛불을 켜들고, 나는 이제서야 내가 만든 음악을 듣는다 그녀는 지금 밥 딜런 공장에서 만든 노래를 듣고 그는 밤새도록 알베르 카뮈 공장에서 만든 책을 읽는다 맥주는 맥주 공장에서 만든 것이다. 휴일에 만든 맥주에는 불량품이 많다 그 많던 벚꽃잎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저 나뭇잎 공장에서는 왜 백만 년 전부터 고독의 음악만 만들고 있나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나는 대답한다. 백 년 동안 고독해지세요 누군가 다시 나에게 묻는다. 고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백년 동안, 사랑을 하세요 그러나 지금은 버찌들도 다 떨어지고 벚나무 공장도 문을 닫을 시간, 노을이 지는 그대의 아름다운 공장으로 가서 누군가 밤새도록 촛불을 밝히는 시간 음악이 있는 곳에서, 음악이 다 떨어진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