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 : 시시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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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신용목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학과지성, 2004
태풍이 해안을 지나가고 있다고 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곳에서 날씨의 모양을 상상했다. 소라를 닮은 여름. 둥글게 몸을 말고 자신에게로 향하다보면, 점점 뾰족해지다가 뾰족한 끝에서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선풍기 뭉게구름 선풍기 뭉게구름, 아무 뜻 없이 선풍기 앞에서 뭉게구름을 떠올리다가 선풍기뭉게구름선풍기뭉게구름, 중얼거린 일조차 잊은 채 밥때를 맞는 것처럼, 구름은 제가 구름으로 불리는 걸 몰라서 비를 내린다. 물이 끓는 소리는 물에 찔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열어보면, 터져서 냄비 속에 담겨 있는 중얼거림처럼, 오늘 찌개는 좀 짜다. 물을 더 부을까? 화상병동 문앞에 꽂혀 있던 이름을 주머니에 넣고 왔다. 선풍기에 대고 아아아아, 하면 펼쳐지는 해안처럼, 여름은 제가 여름으로 불리는 걸 몰라서 가을..
목소리처럼 사라지고 싶었지 공중에도 골짜기가 있어서, 눈이 내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하얗게 사라지고 싶었지 눈은 쌓여서 한 나흘쯤,, 그리고 흘러간다 목소리처럼 , 그곳에도 공터가 있어서 털모자를 쓰고 꼭 한사람이 지날 만큼 비질을 하겠지 하얗게 목소리가 쌓이면, 마주 오면 겨우 비켜서며 웃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쓸고 서로 목소리를 뭉쳐 던지며 차가워, 아파도 좋겠다 목소리를 굴려 사람을 만들면, 그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그러나 사라지겠지 목소리 사이를 걷는다고 믿을 때 이미 목소리는 없고, 서로 비켜서고 있다고 믿을 때 빙긋, 웃어 보인다고 믿을 때 모자에서 속절없이 빠져버린 털처럼 아득히 흩날리며 비질이 공중을 쓸고 간다 목소리를 굴려 만든 사람이 있다고 믿을 때...... 주저앉고 말겠지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