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 : 시시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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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여기 아직 사람 있어요 중학생 때, 불 꺼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벗어나면 오래도록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러나 기다려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퇴근하는 길 사람으로 가득한 차량 이제 와서 외치거나 하지는 않지 사람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그러나 열차가 어둠 속을 달릴 때 차창에 비치는 얼굴들 왜 다 웃고 있는지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2023
산비둘기 두 마리가 정다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을 했는데 그다음은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장 콕도는 말했지 유리왕은 꾀꼬리 두 마리를 보며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을 했고 사람들은 새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나나봐 이건 네가 했던 말이다 그런데 새는 우는 거야 노래하는 거야? 그거야 듣는 사람 마음이지 그럼 지저귀는 건 뭔데? 그건 그냥 짖는다는 말이잖아 새들이 많이 사는 부자 동네였고 주말 오전의 빛과 고요함을 독점했다는 생각에 우리는 조금 들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는 저 사람도 부자일까 괜히 말해보다가 부자 동네는 산과 가깝네 그런 말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산의 초입 저거 꿩이야? 나무 위에 앉은 산비둘기를 가리키며 네가 물어서 그렇다고 답해주었다 '이걸 내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
어떻게 말을 꺼내지, 어떻게 말하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지 ​너는 책상에 앉아 있고 나는 창 너머에 서 있고 ​백년째 복도를 헤매던 사람도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아이들은 일동 차렷하고 인사를 하네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가면 모두 놀라버릴 텐데 이상한 것도 놀라운 것도 이제는 버거운데 ​이렇게 말해야 하지, 어떻게 말하면 경이롭지 않을 수 있지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시면 수업이 시작되시고 나는 창 너머에서 수업을 지켜봅니다 ​수업은 좋습니다 한국의 교육은 백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선량하고 아이들은 무구합니다 ​너는 판서된 것을 따라 적고 나는 창 너머에서 그것을 따라 읽고 ​어떻게 말을 건넬까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말을 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