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 : 시시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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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이규리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끝을 모른다는 것 길 저쪽 눈부심이 있어도 가지 않으리라는 것 가지 못하리라는 것 그저 살아라, 살아남아라 그뿐 겨울은 잘못이 없으니 당신의 통점은 당신이 찾아라 나는 원인도 모르는 슬픔으로 격리되겠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옹호하겠습니다 이후 저는 제가 없어진 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산책은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들어간다 해 질 무렵이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노을을 낭비하였는데 이어지는 저녁의 이야기는 흐린 은유는 ] 아무때나 친절하면 안 된다는 듯 우리는 지나가는 그늘 공기조차 알아채지 않도록 그건 나무에게 이름을 걸어주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 없는 슬픔이 도와 그러므로 그래서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당신은 나의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부질없지만 부질없음으로 더욱 부질없지만 4월이 4월에게 있었습니다 색을 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라진다는 걸 적지는 않겠지요 4월의 눈이 아름답다 하는 동안 어떤 연두는 다 얼었는데 어린 잎들이 입을 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유입니다 어떤 자유는 패배 다친 곳을 묵묵히 들여다 보아요 우리는 왜 똑똑하려고 애를 썼을까요 사라진 연두에 대하여 그리고 밤에 읽는 죽음에 대하여 피해갈 수 없는 것을 두고 남은 사람은 여전히 어려울 것입니다 덧없고 찬란한 이것을 슬프고 아득한 그것을 그러니 어서 가도록 해요 가서 말하지 않도록 해요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봄은 오는 게 아니야 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손목은 너무 세게 잡지 말고 갈 때 놓아주도록 살며시 살며시, 라는 말 울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빽빽한 숲에서도 한눈에 드는 나무가 있지 놓아준 나무 놓아준 손목 시끄러운 곳에서도 뒤돌아보게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놓아준 것이야 그 소리 목소리도 가고 있는 거 원했던 건 가고 있는 거 가고 있는 건 고요가 되겠지 비유 너머에 있는 그것 너머라는 말도 울고 싶은 말이었는데 거기 알 수 없는 그늘이 있지 느릅나무 분재는 겨울에도 가득 초록잎은 달고 놓아줄 때를 잊고서 오래 머무는 건 정말 무서웠는데 쓸쓸하게도 머무는 사이 우는 법을 알아갔을 것이다 나무가 풍경에서 나갈 수 있도록 손목이 약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
토마토를 구워보면 구울수록 더 부드러워져서는 눈물이 많아져요 구운 토마토를 당신에게 주고 싶어요 이후의 모습들은 저렇게 무른 모습이 좋겠어요 생각들이 뜨거워지고 제 소리를 제가 알지 못하고 당신은 가방을 메고 종일 먼 곳을 헤매니 구운 토마토를 먹으면 눈가가 붉어져서는 문득 오래전 잊고 있던 내용을 돌아다볼 듯해요 제안의 독소를 빼내주시니 우리, 단단함에 대해 적을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무너지도록 힘쓸 일이 없도록 아침에 토마토를 구워요 당신을 당신 바깥으로 놓아보아요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진물이 말라붙은 거즈를 보면 그들은 어느새 한몸이 되어 있다 굳이 누가 원했다 하기에도 좀 애매하다 그렇게 말도 없이 애를 낳고 살림을 차리고 시간이 지나면 의미는 쏙 빠지고 이야기만 남지 않을까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고 데려와 생각날 때마다 흔드는 이들은 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불행한 상처만 기억하니까 불행할수록 기억이 많아지니까 마데카솔 광고는 처음처럼 돌아온다 돌아온다는데 누구라 처음을 알까 고쳐 앉으며 돌아누우며 비루한 지상의 상처를 믿어보는 것 영리한 사람은 기억하고 선량한 사람은 이해하겠지 물집이었던 시간에 칸칸이 세 들어 우린 이전을 이미 살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