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 옻닭

1
그늘만 스쳐도 살갗에 소르르 소름이 돋는다
해마다 한 번씩 자신을 스쳐간 폭염과 홍수
팔을 뚝뚝 부러뜨리던 폭설의 기억을 비벼 꼬아
제 속을 치잉칭 결박하는 나무
속을 쥐어짜 잎잎이 푸르디푸른 신음을 뱉어낸다
허나 독기라면 닭도 지지 않는다
한평생을 옥살이로 보내온 그가 아닌가
톱날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벼슬과 부리,
쇠창살 사이로 모가지만 간신히 빼내어
댕강 참수를 당하는 그 순간까지
제 것이 아닌 몸뚱이를 키우며 살아온 그가 아닌가
지독에 이른 동물과 식물이
한 몸이 되기 위해 부글부글 끓고 있다

2
독기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
나를 무심코 집어삼킨 세상에
우둘투둘한 옻독을 옮기리라
뚝배기 국그릇 속에 코를 쥐어박고
아버지와 함께 옻닭을 먹는다
두 편에 오만 원 어쩌다 받은 원고료로
삼십 년 지겟꾼살이 주식으로 삼아온
술담배에 속을 상한 당신
술담배 보단 서른이 넘도록 빈둥대는 아들놈 때문에 더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당신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성, 갈수록 짐만 되는 아들놈의 독성
옻이 올라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오르도록
목구멍까지 차 오른 가려움을 꾸욱 눌러 참는다
독을 우려낸 진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워 삼킨다



<호랑이 발자국>
창작과 비평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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