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 봉숭아 꽃씨

안마시술소 앞 화단 가득 봉숭아꽃이 피었다
어디에 옮기려는 건지 화단 옆엔
점자 성경책이 한 무더기 쌓여 있다
선글라스를 낀 여자 안마사가 지팡이 없이
더듬더듬 현관 계단을 내려와 꽃을 딴다
여자는 봉숭아 꽃물을 들이려나 보다
정작 자신은 볼 수 없는 꽃물을 들이고
바위처럼 굳어버린 근육들을 토닥토닥
꽃잎처럼 연하게 풀어주려나 보다
화단 옆 손때 묻은 성경책을
마침 지나가던 바람이 뒤적거린다
책 갈피갈피마다 봉숭아씨처럼 뿌려진 점자들
성경책을 기름진 흙처럼 덮고 잠들어 있는 점자들
만지면 손끝에 봉숭아 꽃물이 들 것 같다
만지는 손끝 어둠 속에 열 개의 꽃등을 달아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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