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매향리
피난 와서 뭐 먹고살 게 있어야지, 어른이고 아이고 없이 조를 짜서 탄피를 운석처럼 찾아다녔지 그때는 사격 훈련 소리가 피아노 소리였어 밀물 썰물 소리보다 그 소리가 더 고마워서 폭격에 섬이 망가지는 줄도 몰랐다니까 글쎄, 놀란 닭들이 한데 뭉치면 압사를 당하지 소들은 젖이 퉁퉁 불었는데도 젖이 나오질 않지 툭하면 싸움박질에 인심은 갈 수록 야박해지지 이유 없이 자살을 하는 사람들까지, 그래도 그 소리가 마냥 고맙기만 했다니까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그게, 사격 훈련 나왔다가 탄피 떨어지는 곳으로 달려가던 사람들을 야구선수라고 부르기도 했어 야구선수들이 마이볼 마이볼 공을 향해 달려가듯이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를 타고 갯벌을 질주했지 그러다가 죽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나 사람이라는 게 그래 극한에 몰리면 감각이 착란을 일으켜 그 무서운 폭격기들은 더는 오지 않지만 군공항 이전이다 뭐다 지금도 바닷소리 대신 교회당 종소리 대신 피아노 폭격음이 들려온다는 매향리
<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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