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 하늘 골목

성당의 종소리가 노을 속으로 퍼져나가면
빈 도시락통을 딸랑거리며 돌아오시던 어머니,
어린 누이들과 함께 기다리던 골목은
정이 많아서, 처마와 처마가 사이좋게 이마를 맞대고 있었지
어린 우리들 시장기처럼 늘 허기가 져 있던 골목이지만
창문에서 뻗어나온 팔이 맞은편 팔을 향해 국수 그릇을 건네면
김이 식지 않도록 후루룩 하늘도 몇젓가락씩 받아먹던 골목
처마와 처마 사이로 길을 낸다는 건 좁은 창문으로 금방 부친 전을 주고받고
멀리서 온 짐 꾸러미를 대신 받아주기도 하면서
내 것이 아닌 체취도 조금씩 품고 살아보자는 것이었을까
다섯살 겁 많은 시골 아이를 받아준 문현동 옛집
상처투성이 보르크 벽과 벽 사이로 빨랫줄이 내걸리던 골목
더러는 아버지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창피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탁자를 사이에 두고 국수를 들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
이마가 부딪치지 않는 딱 그만큼씩 떼어놓는 사이는 있었으니
어쩌면 그 사이를 지키기 위해 집들은 들썩이는 슬레이트 지붕마다 돌을 얹어놓고
바닷바람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을까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누이들과 나는 그 사잇길에 앉아 하늘을 우러르길 좋아 하였다
넓기만 한 하늘도 이 가난한 마을에 이르러서는
처마와 처마 속에 끼어 좁장한 골목처럼 풀어져 구불거리곤 하였으니
골목 따라 오는 별을 헤아리듯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간들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작과 비평사, 2014

Copyright 2024. GRAVI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