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 바다로 간 코뿔소

수목한계선 너머로 자신을 밀어 올린 나무들, 암벽 위에서 실족한 나를 잡아준 고사목 가지가 백록의 뿔이었다 침 바른 아까기 가시 코 위에 올려 놓고 강둑을 질주하던 유년이 절멸에 이른 짐승이 후예가 될 줄은 몰랐겠으나 활활거리던 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 외따로 솟은 화산도가 된 것이 아닌가 하였다 바다에서 모든 섬은 중심이다 저마다의 중심으로 흩뿌려진 점묘화의 어느 한 구석에서 모스부호처럼 나도 신호음을 내고 있는 것이리라 오 황홀한 분리주의자들이여 뿔뿔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별자리가 된 밤바다의 불빛들이여 숨이 막혀 오는 산정이 코를 틀어 막고 뛰어든 어린 날의 강바닥만 같았을 때 나는 솟아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마그마 꿈틀대는 지구의 두개골 위로 막을 뚫고 막 돋아나는 중이었다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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