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가 붉은 건 다 설명할 수 없다
석류는 천연 에스트로겐만도 아니고
여름의 소나기와 천둥과 뙤약볕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당신에게 내가 이끌리는 이유처럼,
이유를 몰라도 좋은 이유처럼
그걸 그늘이라 부른다면 석류는 그늘로 살찐 과육이다
물론 그 또한 나의 해명에 지나지 않겠지만
적어도 석류를 사랑으로 외롭게 하지는 않겠다는 뜻
해마다 석류가 붉는 것은, 석류 앞에 내가 서 있는 것은
석류의 비밀을 너와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풀고 풀어도 풀 수 없는 비밀을 함께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석류는 그저 석류이다
석류로서 투명하고 석류로서 충만할 뿐이다
침이 고이는 것들은 대체로
그렇질 않던가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문학동네, 2022
'손택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택수 - 바다로 간 코뿔소 (0) | 2024.12.03 |
---|---|
손택수 - 함평 (0) | 2024.12.03 |
손택수 - 고군산군도 (0) | 2024.12.03 |
손택수 - 기계의 마음 (1) | 2024.12.03 |
손택수 - 권정생의 집 (0) | 2024.12.03 |